영포티 논란, 정말 문제는 ‘비판’이었을까

영포티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부터 봐야 한다

영포티.
Young Forty.

이 단어가 처음부터
“40대는 다 문제다”
이런 의미로 만들어진 말은 아니다.

핵심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다.

자기 나이를 부정한 채
20대 문화에 무리하게 끼어들고,
20대 여자에게
“나 아직 젊어”라는 착각을 강요하고,
상대가 불편해해도 그걸 감각으로 못 느끼는 사람들.

클럽, 술자리, 소개팅, 회사 회식 자리에서도
선 넘는 농담, 선 넘는 스킨십,
그리고 항상 붙는 말.

“요즘 애들은 예민해”

이런 행동을 풍자하려고
영포티라는 단어가 나온 거지
40대 전체를 조롱하려고 만든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좀 이상하다

요즘 보면
영포티를 비판하면
바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그거 나이 혐오 아니야?”
“세대 혐오 조장하지 마라”
“왜 특정 집단을 조롱하냐”

문제는
행동에 대한 비판
어느 순간 존재에 대한 혐오로 둔갑한다는 거다.

누군가가
“40대 남성이 20대 여자에게 츄파춥스를 던지는 게 이상하다”
라고 말하면,

그다음 반응은 이렇다.

“40대 남자들 다 그런 줄 아냐?”
“너가 더 혐오자다”

아니, 잠깐만.
아무도 “다 그렇다”라고 안 했다.


이상한 행동을 지적했을 뿐인데, 왜 화살이 바뀔까

이 구조가 묘하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은 사라지고,
그 행동을 말로 설명한 사람
갑자기 문제 인물이 된다.

영포티라는 단어가 불편한 사람들은
정작 왜 그 단어가 생겼는지는 관심 없다.

그저
“기분 나쁘다”
“내 또래가 욕먹는다”
이 감정만 남는다.

그러다 보니
논의의 초점이 완전히 엇나간다.

✔ 불편한 접근
✔ 권력 차이에서 나오는 갑질
✔ 나이를 방패 삼은 무례함

이건 다 증발하고
오직 단어 하나만 잡고 늘어진다.


혐오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이고 있다

요즘은 진짜 이상한 흐름이 있다.

누군가의 문제 행동을 지적하면
그 순간
“혐오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나.

행동을 비판하는 건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그걸 전부 혐오로 묶어버리면
결국 남는 건 하나다.

아무도 아무 말 못 하는 사회.

그리고 그 틈에서
진짜 문제 행동은 더 편해진다.

왜냐면
“말하는 쪽이 더 위험해지니까.”


영포티 논란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다

이건
40대 vs 20대 싸움이 아니다.

자기 성찰이 가능한 어른 vs
영원히 젊다고 착각하는 어른
의 문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경계선을 아는 법을 배우는 거고,
상대의 불편함을 먼저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는 거다.

그걸 못 하면서
“나 아직 젊어”만 외치면
그건 젊음이 아니라
눈치 없음이다.


비판받아야 할 건 단어가 아니라 행동이다

영포티라는 말이 불편할 수는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의 방향이
항상 비판하는 사람에게만 향한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진짜 질문은 이거다.

“왜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고 있지?”
“왜 이걸 겪는 쪽은 항상 침묵해야 하지?”

이 질문을 덮기 위해
혐오라는 단어를 방패로 쓰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영포티를 비판하는 게 혐오라면,
무례를 무례라고 부르는 건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결국 무례한 사람에게만 편한 사회가 된다.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일까?

…난 잘 모르겠다.
근데 최소한,
문제 행동을 말할 자유까지
혐오로 묶어버리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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